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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말 대통령 눈엔 뒤꽁무니만…관료들은 ‘몸 세탁’ 외국행”[최영해의 폴리코노미]

최영해기자

입력 2021-02-26 11:00:00 수정 2021-02-26 11: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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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던 공무원들도 대통령에게 등 돌렸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청와대 ‘순장조’ 3인 스토리
“대통령 권력만 지는 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일이 더 걱정”


“임기 말 대통령 눈에는 모든 것이 뒤꽁무니만 보입니다. 사람도 등이 먼저 보입니다. 청와대에서 거대한 권력이 빠져 나갑니다. 대통령을 둘러싼 많은 것들이 썰물에 휩쓸려 나갑니다. 심지어 측근까지도 다음 대선 주자에게 달려갑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 청와대를 지켰던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당시 정책기획위원장 겸 대통령정책특보)는 임기 말 대통령의 심리적 불안감을 아직도 떨치지 못한다.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선 노 대통령이 “오늘도 원맨쇼를 했다”고 푸념할 정도로 참모들은 입을 꾹 닫았다. 새 정부 출범 첫 해와 마지막 해 청와대의 모습은 180도 달랐다. 모두 대통령을 떠나려 했고, 어떻게 하면 대통령 눈에 안 띌지를 궁리했다. 대통령 눈에는 모든 사물이 뒷모습만 보였다. 권력의 시간은 종착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는 참모들의 모습을 보는 대통령은 불안하고 두렵기만 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누구도 모르는 고요한 폭풍전야(暴風前夜)였다.

●관료 출신 중용한 노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의 2003년 5월 미국 방문길. 뉴욕으로 향하는 대통령전용기에서 김진표 경제부총리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동아일보DB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 관료 출신을 중용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 7개월 보름간의 해양수산부 장관 경험은 노 대통령이 ‘관료의 세계’를 엿본 좋은 기회였다. 막내 경제부처 장관으로서 그는 진념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경제부처 장관 회의에서 말석에 앉아야 했다. 예산을 주무르는 전윤철 기획예산처 장관에게 해수부 장관은 ‘을(乙) 중의 을(乙)’이었다. 당시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이 김진표(현 민주당 의원), 기획예산처 예산실장이 박봉흠이었다. 노 대통령은 두 사람을 참여정부에서 경제부총리와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중용한다. 매사에 핏대를 세워 ‘혈죽(血竹) 선생’으로 불리던 전윤철은 ‘공직 사회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감사원장으로 발탁됐다. 노무현 해수부 장관 시절 이들이 최고의 공무원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인이 2002년 12월 28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전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으로부터 경제현안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은 그를 참여정부 감사원장으로 발탁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실제로 노 대통령은 2002년 1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대선캠프 참모 출신 위주로 꾸렸다가 2003년 2월 조각(組閣) 때 청와대 인선에선 관료 출신을 폭 넓게 발탁했다. 인수위에선 관료 출신으로 김진표 부위원장만이 간부 자리에 있을 뿐이었지만 청와대 인선에선 관료들이 많이 들어왔다. 청와대가 출범하면서 공무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실용주의자인 노 대통령에겐 쥐만 잡을 수 있다면 흑묘든 백묘든 상관없었다. 노 대통령이 탁상공론의 정책을 펼치지 않은 것도 청와대에 행정관부터 비서관까지 넓게 포진한 관료 출신들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이었다.
●순장(殉葬)조 구윤철, MB 정부에선 친정 복귀 못해
김병준 교수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김병준TV)에서 “대통령 임기가 중반을 넘는 집권 3~4년 차에 특히 많은 관료들이 외국 파견 근무를 자청하고 손을 든다. 이른바 ‘몸 세탁’을 하러 가는 것이었다. 믿었던 공무원 출신들이 대통령 옆을 떠나면 그 심정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해외 파견 근무는 청와대 권력이 쇠락해질 때 눈치 빠른 관료들의 좋은 선택지이다. 관료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정권이 교체될 때 신분 세탁을 할 수 있는 용이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임기 말 관료들의 탈(脫)청와대 현상을 “가을이 깊어지면 오동잎이 떨어진다”고 빗댔다.

2004년 3월 청와대에서 박봉흠 대통령정책실장과 한덕수 국무조정실장, 김병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노동부 업무보고 회의 전에 뭔가 상의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청와대에서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을 ‘순장(殉葬)조’라고 부른다. 대부분 대선캠프 출신이거나 대통령과 끝까지 인연을 지키려는 참모들이다. 공무원들이 모두 뒤꽁무니를 보이며 ‘난파선’을 탈출하려고 할 때 다른 선택을 한 경우도 없지 않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을 맡고 있는 구윤철은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국정상황실 행정관으로 청와대에 들어왔다. 노무현의 핵심 측근인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밑에서 일했다. 기획예산처 출신인 그는 노무현 청와대 5년 동안 국정상황실과 인사제도비서관실에서 근무했고, 2007년 12월엔 국정상황실장까지 겸임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면서 그도 갈 곳을 잃었다. 친정인 기획재정부로 복귀하지 못한 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5개월이 지나서야 미국 워싱턴의 미주개발은행(IDB)에 귀양살이 같은 파견 근무를 떠났다. 참여정부 인사를 담당했던 탓에 공직 인사에서 물 먹은 수많은 선후배들이 그를 뒷전에서 삿대질하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5년 동안 ‘인공위성’으로 돌다가 박근혜 정부 출범 뒤인 2013년 5월 1급(관리관)에서 국장급으로 직급을 낮춰 기재부로 겨우 복귀할 수 있었다. 2003년 청와대 파견 발령 후 10년 만의 친정 귀환이었다. 청와대 파견 근무한 관료의 명암을 여실히 엿볼 수 있는 사례로 공무원 사회에선 회자(膾炙)된다. 역설적으로 그가 노무현 청와대 순장조였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서 기재부 2차관과 국무조정실장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7월 청와대 총무실에서 신임 국무조정실장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함께 걸어 나오고 있다. 경제관료 출신인 구윤철은 참여정부 5년 동안 청와대에 파견돼 근무했다. 동아일보DB


●MB 청와대 근무가 박근혜 정부에서도 부담?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경제관료 중에서도 누구나 인정하는 ‘에이스’만이 파견될 수 있는 곳이다. 경제부처 공무원에게 경제수석실은 승진 코스나 다름없다. 친정 부처로 복귀할 경우엔 한 단계 높은 직급으로 영전해 가는 것이 ‘불문율’처럼 돼 있다. MB 정부에서 잘 나가던 경제부처 관료 출신 A씨는 이명박 대통령 임기를 몇 개월 남겨두고 해외기구 파견 근무를 자청했다. 김병준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난파선’을 빠져나간 ‘몸 세탁’ 공무원이었다. 실력으로 친다면 주요 경제부처 장관이 되는 것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실력 있는 관료였다. 그가 이명박 대통령 임기를 불과 몇 개월 남겨두고 해외기구로 파견을 자청한 것에 대해 청와대 내에선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2012년 12월 치러진 대선은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맞붙어 보수정권의 재창출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안정을 추구하는 관료로선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3년 2월 청와대에서 마지막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A씨가 해외기구 파견을 마치고 돌아왔을 땐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미 경제부처는 판이 잘 짜여 있었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운신 폭은 그리 넓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근무가 흠이 됐는지, 아니면 MB 청와대에서 임기 마지막 해 해외 근무를 자청한 것이 결함이었는지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다. 자리를 찾지 못한 A씨는 또 다시 해외 기구 파견을 자청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정권이 바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청와대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청와대 근무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갖춘 케이스로 경제 관료들 입에 오르내린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3년 2월 마지막 국무회의에 앞서 국무위원들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 동아일보DB


●탄핵 당한 박근혜 청와대는 ‘난파선’이었다
정상적으로 대통령 임기를 끝낸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도 관료들의 청와대 근무는 양날의 검(劒)이었다. 임기 말 청와대 근무는 자칫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위험 지대로 꼽힌다. 누가 보더라도 ‘장관감’이지만 관운(官運)이 맞아떨어져야 그 자리를 꿰어 찰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반에 청와대 경제수석실 비서관으로 파견 나온 B씨는 청와대 근무를 마칠 무렵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을 겪어야 했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절차기 시작된 이후 B씨는 하루하루가 좌불안석(坐不安席)이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5년 서울 세종문화회괸에서 열린 제70주년 광복절 중앙경축식에 참석한 모습.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임기 동안 불편한 관계를 가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통령이 직무정지를 당한 상황에서 비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컨트롤타워가 망가졌으니 모두 일손을 놓고 있었다. 청와대에 출근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대통령이 탄핵되는 마당에 외부 사람을 만나기도 꺼림칙했다.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쳐도 정권이 바뀌면 친정인 부처 복귀가 만만찮은데,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으니 이제 관료 생활을 접어야 할 위기에 처했다. 결국 그는 청와대 비서관 경력에 걸맞지 않는 국제기구 파견에 손을 들고 청와대를 간신히 빠져나와야 했다. ‘점령군’에 짓밟히기 전에 선택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영광스런 청와대 근무가 주군을 잘못 만나면 자칫 오점으로 기록될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10월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합법과 관행 불법의 경계 사이, 대통령은 늘 불안했다
다시 노무현 청와대 임기 말로 돌아가 보자.

“임기 말 청와대에 앉아 있는 대통령은 불안하고 두려울 따름입니다. 대통령의 권력만 가는 게 아니라 그 다음에 올 일이 걱정입니다. 역사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나는 합법이라고 생각해서 했는데, 그동안 수없이 해오던 관행대로 했는데 봐줄까? 이런 생각에 대통령은 밤잠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2007년 퇴임을 앞둔 노 대통령을 옆에서 지켜본 김병준 교수의 말이다.

그는 “당시엔 합법이고 관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것이 적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원 특별활동비 때문에 처벌을 받았는데, 이전 정부에선 대부분 관행으로 이뤄졌다. 그걸 문재인 정부에서 모두 잡아넣었다”며 “임기 말 대통령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역사에 어떻게 평가될지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7년 2월 서울 광화문 네거리 빨간 신호등 뒤로 청와대가 보인다. 특검의 박 대통령 조사가 임박한 때였다. 동아일보DB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탄생한 정부다. 대통령 탄핵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의 가슴엔 비수가 숨어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과거 청산과 이전 정부 지우기는 불가피해 보인다. 설령 정권을 재창출한다고 해도 한국 정치의 구조적 측면에서 전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는 이뤄질 수밖에 없다.

“임기가 다가올수록 대통령의 기분은 업 다운이 심해집니다. 짜증을 잘 내고 신경질을 내는 일이 많아집니다. 참모들 얘기도 듣지 않으려하죠. 농담도 대통령은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탄핵이라는 바람에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은 문재인 청와대의 심리적 불안은 더욱 심할 것입니다. 대통령이 정권이 끝나더라도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을 찾게 되면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리하면 더욱 큰 화를 입게 됩니다. 역사 앞에 겸허해야 합니다.”

노무현 청와대가 막을 내린지 14년이 흘렀다. 노무현의 마지막 순장조 김병준의 고언은 오늘도 유효한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마지막 날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한 때. 청와대 경호원들이 문을 닫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기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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