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주거안정” 취지에도… 전세금 되레 급등 역효과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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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세 기간 연장 추진 논란]


18일 정부와 여당이 일반 주택의 임차인에게도 계약갱신청구권(임차인이 원할 경우 전세 계약기간 연장을 보장해주는 권리)을 보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취지는 좋지만 여러 부작용이 우려되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먼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은 가격 안정 대책이 선행되지 않으면 오히려 전·월세 가격 급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집주인이 계약기간이 길어지는 데 대한 보상 심리로 전세 계약금과 월세를 큰 폭으로 올려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대차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는 과정에서 전세금이 크게 올랐다. 1989년 임대차 계약기간 연장 방안이 예고되자 그 전해에 7.34%였던 서울 전세금 상승률은 1989년에 23.68%로 크게 올랐다. 이듬해에도 16.17% 올랐다.

전·월세 공급 물량이 줄어드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1, 2년마다 나오던 전·월세 물량이 4년 이상 주기로 나오게 되는 만큼 공급이 축소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임대주택 사업 전반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것과 맞물려 장기적으로 전·월세 물량 공급이 줄어들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함영진 직방 데이터랩장은 “이번 정부 출범 이후 주택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축소, 전·월세 신고 의무화 추진 등 임대사업 규제가 지속적으로 도입됐다”며 “임대인에 대한 인센티브 없이 규제만 도입된다면 이들이 더 이상 적극적으로 주택 임대에 나서지 않으며 물량이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일부 지역의 경우 전세 계약금만 수억 원에 이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집주인의 재산권 행사 제약 파장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종운 리딩투자증권 변호사는 “상가 임대차에만 예외적으로 계약갱신청구권을 인정해준 것은 단골과 상권 형성 등 입지의 특수성이 크고, 임차인의 생계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라며 “주택은 이 같은 특수성이 적어 임대인 입장에서는 재산권을 침해당한다고 볼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날 당정협의 발표가 전·월세 상한제 도입을 앞당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월세 상한제는 계약 연장 시 일정 인상률 이상으로 전·월세를 올려 받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2년 전세 기간이 만료돼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했을 때 갱신되는 계약의 전셋값 인상률을 최대 5% 이하로 못 박는 식이다.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국회의원 시절 관련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국회에 발의돼 있는 계약갱신청구권 관련 법안들은 계약 갱신 시 연 5% 수준이나 계약 갱신 당시 소비자물가상승률 수준에서만 임대료를 증액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한편 국민 주거와 관련된 주요 정책이 이날 국토교통부는 참여하지도 않은 채 법무부와 여당의 사법 개혁 당정협의에서 불쑥 나왔다. 통상 이 같은 정책은 다른 주거 안정 대책과 함께 종합 발표되기 마련이다. 실제로 국토부는 올해 6월 발표한 ‘제2차 장기 주거종합계획(2013∼2022년) 수정계획’에서 내년 이후 임대주택 등록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계약갱신청구권 및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이 제대로 검토됐는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새샘 iamsam@donga.com·유원모 기자
#당정협의#법무부#더불어민주당#전월세 기간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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