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글로벌리즘 아닌 아메리카니즘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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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공화당 전당대회 마지막날/이승헌 특파원 현장 르포]

21일 오후 10시 18분(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르자 반(反)트럼프 시위로 18일부터 계속 시끄러웠던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아레나 안팎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노상에서 티셔츠를 팔던 상인도, 시위대를 단속하던 경찰들의 눈도 모두 전당대회장을 생중계하는 TV 스크린에 고정됐다.

이날 빨간색 넥타이를 고른 트럼프는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5만여 명의 대의원과 공화당원들이 일제히 “트럼프”를 외치자 그는 눈을 연신 껌벅거렸다. 기자 옆에 있던 당 관계자는 “저런 표정 처음 본다. 눈물이 고인 것 같다”고 했다.

머뭇거림도 잠시, 트럼프는 ‘아메리카니즘’을 기조로 한 집권 구상을 거침없이 밝혔다. 무역이든 안보든 모든 기준은 미국의 이익이라는 것이다. 동맹국들은 방위비를 더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에 대해서도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도둑질하고 불법으로 만든 제품을 덤핑해 왔으며 환율 조작을 일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 노동자들에게 해를 주거나 경제자유와 주권을 감소시키는 어떤 무역협정에도 서명하지 않겠다”며 “원하는 협상을 얻지 못하면 협상장을 걸어 나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내에선 일제히 “트럼프”를 외쳤다. 트럼프가 “USA”로 바꿔 부를 것을 유도해 전대장은 바로 “USA, USA” 함성으로 가득했다.

트럼프는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거칠게 비판했다. 그는 “힐러리는 대기업과 엘리트 언론, (월가 등) 고액 기부자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며 “힐러리는 그들에게 유리한 사회, 경제 구조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벵가지 사태, 이라크 철군 등을 거론하며 “힐러리는 본성도, 판단력도 나쁜 사람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그를 국무장관에 임명한 것을) 진심으로 후회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트럼프의 클린턴 때리기가 계속되자 지지자들은 “힐러리를 구속하라(Lock her up)!”고 외쳤다. 트럼프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11월 본선에서 힐러리를 무너뜨리면 된다”고 화답했다.

그는 최근 40여 년간 대선 후보 수락 연설 중 가장 긴 1시간 15분 동안 연설했다. 트럼프는 “미국은 이제 더이상 패배하지 않고 승리할 것”이라며 “나는 미국을 다시 강하고, 자랑스럽고, 안전하며 그리고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머리 위로는 2만여 개의 풍선이 휘날렸고 전대장 인근에 있는 이리 호 주변에선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나흘간의 ‘트럼프 쇼’는 이렇게 끝났다. 우려했던 유혈 폭력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트럼프가 전날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이 러시아 등의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자동으로 개입하도록 한 조항을 재검토하겠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동맹국들 간의 연대는 나토의 핵심 가치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봐도 유럽의 평화가 미국의 평화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일침을 가했다.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미치 매코널은 “정치 신예가 보이는 실수”라고 말했고, 같은 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트럼프 발언은)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매우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날 끝난 공화당 전당대회에 이어 민주당은 25일부터 28일까지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클린턴 전 장관을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한다. ―클리블랜드에서

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트럼프#전당대회#후보수락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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