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친박의 나라, 비겁하고 얍삽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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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 충성하겠다며 표 달라고 무릎 꿇고
밀양 신공항까지 원하던 TK 친박들이 사드엔 반대
줏대도 철학도 없는 그룹이 좌지우지하는 이 나라
제대로 갈지 걱정이다

심규선 대기자
심규선 대기자
거짓말은 이제 그만두자. 우리 민족은 나라가 어려움에 빠지면 언제나 단결해서 국난(國難)을 극복해 왔다는, 정말 같은 그 거짓말 말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사사건건 파당과 지역과 이념에 따라 짓밟고, 헐뜯고, 헤집어서, 국난 수준으로 만들어 버리는 나라가 됐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만 해도 그렇다.

물론, 세태가 변했다고 해도 정부의 무능과 나태는 용서하기 어렵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계속 실패했다고 하더니 갑자기 무서워진 이유는? 배치할지 말지 더 고민할 듯하다가 허겁지겁 발표한 속사정은? 미국 측의 요청이 없었으니 협의도 없고 결정도 없다는 ‘3No’의 진실은? 중국의 반발을 그토록 걱정하더니 해소할 방법은? 대통령과 국방부, 외교부, 미국하고만 정보를 주고받으면 만사 OK? 적어도 2년 동안 허송세월해서 문제를 키운 책임자는? 결국은 정보 독점과 비밀지상주의, 근거 없는 낙관에 매몰돼 정책의 최고 고객인 국민에게 설명 책임을 게을리한 결과가 지금의 혼란을 자초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는 ‘결단’이다. 결단의 배경은 안보주권과 한미동맹이고, 그 결단을 뒷받침한 것은 과학과 기술이다. 그런 본질은 애써 외면하고, 절차와 중국의 반발을 문제 삼아 철회나 재검토를 주장하는 것은 비겁하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내놓는 사태 해결책에 동의하면서 나는 다른 점에 착목한다.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잘 알면서, 내가 결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는 사실에 슬며시 안도하며, 취약한 주장과 논리를 민주주의로 포장해서 반사 이득을 얻으려는 자들에 대한 노여움이다. 남을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낀다는 점에서 그들은 사드를 사디즘의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

그 맨 앞줄에 친박계가 대다수인 TK(대구경북) 의원들이 있다. 불과 몇 달 전에 대통령을 배신한 자를 내쫓아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고,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를 뒷받침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땅에 엎드려 표를 읍소했으며, 최근에는 밀양 신공항까지 달라고 했던 그들이다. 그런데 사드를 성주에 배치한다고 하니 자기만 살겠다고 표변해서 대통령을 깨끗하게 버렸다. 이게 ‘배신의 정치’가 아니면 무엇인가. 표 없는 나라보다 표 있는 지역구? 나라가 없으면 지역구도 없다는, 당당한 정치인을 기대하는 게 그토록 사치인가. 비겁하고 얍삽한 이런 그룹이 지금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야당의 지도자들은 어떤가. 이번 경우엔 ‘지도자’라는 말도 아깝다. 만약 본인들이 결정을 내렸다면? 배치하든 말든 똑같이 격렬한 논쟁에 빠졌을 것이다. 그런데 국민투표, 국회동의, 재검토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책임회피와 동의어일 뿐이다.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분명하게 밝히는 게 오히려 정직하다. 찬성한다면 대승적 견지에서 정부를 돕고, 반대한다면 철거를 대통령 선거 공약에 넣길 바란다.

중국의 태도는 오만하고, 중국의 언론은 불쾌하다. 중국은 사드의 위험성을 과장함으로써 한미를 이간하고, 한국에 부채의식을 지우려는 속셈은 없는지가 자못 궁금하다. 북핵 위험이 사라지면 사드도 철거하겠다는 것만큼 확실한 대답이 어디 있나. 중국은 사드를 비난하기에 앞서 북한의 불장난을 막는 데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만약 중국이 보복을 한다면 당당하게 감내하면 된다. 주권과 자존심을 지키려면 그만한 대가는 치러야 한다.

성주 군민에게 냉정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그렇지만 정부에 설명할 기회와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 가장 큰 쟁점인 전자파는 과학의 문제다. 괴담과 루머에 굴복할 수는 없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우리는 ‘뇌송송 구멍탁’이라는 선동에 지는 바람에 너무나 비싼 비용을 치렀다. 성주 참외가 벌써부터 매스컴에 등장하고, 달걀과 물병 공격을 받는 총리의 모습이 주목을 받는 것은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성주군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계와 외교가에선 한국은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아니라 돌고래쯤은 된다는 말이 돌고 있다. 고등어쯤이라는 반박도 나왔다. 착각하면 곤란하다. 돌고래든, 고등어든, 새우든 힘든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다만 한국 외교는 한국만의 논리와 공간,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길이 열린다는 공감대는 점차 넓어지고 있다. 그래서 외교에도 창조와 창의라는 말이 등장했다. 사드 문제는 그 중요한 시험대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그룹의 도움으로는 시험대에 올라갈 수조차 없지만.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사드 배치#친박#대구경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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