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마을①] 400년간 마을 지키는 동령산 ‘하얀 날개짓’

김원겸 기자

입력 2016-08-23 05:45 수정 2016-11-2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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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포마을 동령산은 수백년 전부터 왜가리와 백로의 도래지다. 창공을 자유롭게 누비는 왜가리를 두고 마을사람들은 전장에서 전사한 남편을 따라 순절한 송씨 부인이 환생한 것이라 믿었다. 고흥(전남)|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11. 도화면 발포마을 황정록과 송씨부인

세밀한 생활사와 풍속사 혹은 세상의 어긋난 도리에 대한 풍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동안 윤색과 와전의 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그나마도 이야기를 낳은 공간에서 나고 자란 어르신들의 입이 아니라면 들을 수 없다. 콘텐츠로서 다양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 본래의 설화를 들여다보는 까닭이다. 넘쳐나는 대신 그만큼 사라져가는 진정한 스토리텔링 콘텐츠로서 설화의 가치도 뛰어나기 때문이다.특히 전남 고흥군은 땅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반도의 토양 위에서 먼 옛날부터 이야기가 풍성했던 곳이다. 조선시대 류몽인이 이 곳에서 ‘어우야담’을 쓸 수 있었던 한 배경이기도 하다. 웹툰과 애니메이션,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의 또 다른 원형일 수도 있을 고흥의 설화를, 스포츠동아가 격주 연재한다.


임진왜란 전사한 남편 따라 순절한
송씨부인과 두아이 기리는 제사 후
봄이면 왜가리·백로들 ‘백합’ 만개
매년 흉년 들던 마을에 평온 넘쳐나


고흥군 도화면 발포마을 입구의 오른편에 엎드린 동령산은 왜가리와 백로의 도래지다. 느티나무와 팽나무 등이 뒤섞여 무성한 숲을 이룬 동령산은 해발 70m의 야산. 발포마을 서편의 도제산 기슭에서 왜가리와 백로로 뒤덮인 동령산을 내려다보면 커다란 백합꽃이 산을 뒤덮은 절경이 펼쳐진다.

동령산의 왜가리와 백로는 2월 말부터 날아와 새끼를 낳고 기르다 10월까지 살다 떠난다. 추운 날을 제외하고 이들이 만든 백합은 언제든 동령산에 피어 있다.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수백년 전부터 왜가리가 날아들었고, 20여년 전부터 백로가 섞여 들어오기 시작했다. 개체 수를 두고 마을사람들은 “500마리쯤” “수천 마리” 등 제각각 이야기한다. 왜가리와 백로는 모두 황새목 왜가리과이고, 색깔로 구별된다. 회색이 왜가리, 흰색이 백로다.

왜가리와 백로가 입구를 지키는 발포마을은 유서가 깊다. 충무공 이순신이 만호(종4품의 초급 지휘관)로 승진하고 해군 지휘관으로 처음 부임한 곳이다. 거북선도 이 곳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유명한 ‘오동나무 일화’의 배경인 고장이다.

동령산 끝자락 우암절벽에 세워진 송씨 부인 동상. 고흥(전남)|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이순신이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울 당시 그 휘하에는 황정록이란 이름의 장수가 있었다. 이 장수와 관련된 이야기도 발포마을을 ‘이야기가 있는 마을’로 만든다. 황정록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때 발포만호로 부임했다. 이순신이 몇몇 간신들의 모함으로 파직되고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선조30년) 7월, 발포함대를 이끌고 출동한 황정록은 원균 통제사의 조선수군이 대패한 칠전량해전에 나섰다 적탄에 맞아 전사하고 말았다.

그의 아내인 송씨 부인은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1남1녀의 어린 자식들을 품고 동령산 끝자락 우암절벽에 올라섰다. ‘왜놈들에게 자식들까지 굴욕당해 치욕적인 삶을 저주하는 것보다 차라리 남편을 따라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옳은 일’이라 판단하고 두 자녀와 함께 바다로 뛰어들어 순절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7년이 지난 후부터 발포마을에 매년 흉년이 들고 역병이 돌았다. 어느 날 마을 한 노인의 꿈에 황정록과 송씨 부인이 어린 자식들과 함께 나타났다. 자신들이 구천을 헤매고 있으니 마을이 평안하려면 동령산에 제당을 짓고 동제(洞祭·마을사람들이 함께 지내는 제사)를 지내줄 것을 청했다.

노인은 잠에서 깨어 마을사람들에게 꿈 이야기를 전했고, 마을사람들은 곧바로 동령산에 의열사라는 사당을 지어 송씨 부인과 두 아이의 위패를 모셔 제사를 지냈다. 이후 풍농과 풍어가 이어졌고, 마을이 평온해졌다고 한다.

첫 동제를 의열사에서 치른 후 5년째 되던 해, 왜가리가 동령산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봄이면 어디선가 날아와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살다 가을이면 다시 어디론가 떠나는 일이 반복됐다. 마을사람들은 송씨 부인과 자녀들이 환생한 것이라 믿었다.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왜가리의 비행을, ‘어린 자녀들을 물귀신으로 만들고 말았다’는 송씨 부인의 한을 달래주는 의식으로 여겼다.

발포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의열사에서 제사를 지낸다.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낸 후부터 지금까지 약 400년 동안 마을이 평온한 이유라 믿기 때문이다. 마을사람들은 송씨 부인이 두 자녀와 뛰어내린 우암절벽 위에 동상을 세웠다. 그리고 객지사람들에게 그 절벽을 ‘열녀절벽’이라고도 소개한다.

발포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동령산의 왜가리와 백로를 신성하게 여긴다. 이들의 배설물이 때로는 빨래를 망치고, 요란한 울음소리가 소음이 되기도 하지만, 마을의 수호신이자 길조(吉鳥)라는 소중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 TIP 설화란?

사람들 사이에 오랜 시간 구전(口傳)돼 내려오는 이야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한다. 일정한 서사의 구조를 갖춰 민간의 생활사와 풍습, 권선징악의 가치 등을 담은 이야기다.

고흥(전남)|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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