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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중동 중재자” “안보 강화” 의기투합… 스트롱맨들의 ‘브로맨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입력 2019-10-26 03:00:00 수정 2019-10-26 04: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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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쿠르드족’ 둘러싼 독재자 3人의 합종연횡




이달 9일부터 22일까지 시리아 북부에서 13일간 벌어진 터키·쿠르드 갈등의 최대 수혜자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67),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65),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54)이 꼽힌다. 경제난과 장기집권 피로감으로 자국 내 지지율 하락에 고전하던 셋은 이번 사태로 상당한 전리품을 챙겼고 종신집권의 발판까지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 대신 중동에서 ‘새로운 경찰’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과시했다. 그간 사이가 좋지 않았던 터키와도 손잡으며 미국,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맞설 계기를 마련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르드족과 미국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서 힘겹게 확보한 시리아 북부 지대를 손쉽게 챙겼다. 2011년 내전 발발 후 정부군, 반군, 쿠르드, IS 점령 지역으로 나라가 쪼개져 수도 다마스쿠스 일대에서만 명맥을 유지했던 아사드 대통령도 쿠르드족과 제휴하며 반군 퇴치 기회를 잡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내년 대선 승리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시리아 철군을 단행했다. 하지만 돈만 앞세우다가 쿠르드족이란 혈맹, 국제사회의 신뢰, 중동의 지정학적 요충지를 모두 잃었다. 미국과 사이가 나쁜 이 세 명의 스트롱맨만 일종의 어부지리를 얻은 형국이다. 셋은 △장기 집권 △강력한 반대파 탄압 △반미 △종신집권 야심 등 공통점도 많다.


○ 중동의 ‘새로운 경찰’ 푸틴

카타르 알자지라, 미국 아랍전문 싱크탱크 워싱턴아랍센터 등에 따르면 가장 돋보인 인물은 푸틴 대통령이다. 그는 중동에서 발을 빼지 못해 안달인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동에서 보폭을 넓혔다. 그 결과 이번 사태에서도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 중재자 노릇을 할 사람이 자신임을 각인시켰다. 마크 캐츠 미 조지메이슨대 정치학과 교수는 알자지라 기고에서 “중동에선 러시아와 손잡지 않으면 손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진단했다.

‘현대판 차르’로 불리는 푸틴 대통령은 2015년 9월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며 아사드 정권의 배후를 자처했다. 최첨단 전투기와 폭격기를 동원해 IS와 반군의 역량을 약화시켰다. 아사드 대통령이 자국 영토에 터키군이 들어왔는데도 즉각 강경 대응에 나서지 않은 이유로 푸틴과의 교감설이 제기된다. 한 중동 외교관은 기자에게 “자국 반대파에게 금지된 화학무기를 사용해 ‘중동의 도살자’로 불린 아사드조차 푸틴의 말을 거스르지 못한다. 푸틴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아사드 정권이 유지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향후 시리아 재건 사업과 중동 정세에 푸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질 것으로 보인다.

친미 국가 이스라엘도 러시아와 밀착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2015년 이후 러시아를 다섯 번 찾았다. 같은 기간 미국을 여섯 번 방문한 것과 맞먹는다. 이스라엘이 자국에 위협적인 시리아 군사시설을 공습하기 전 러시아와 사전 협의를 하는 건 중동 외교가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성일광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는 “시리아가 아닌 다른 중동 지역에서도 미국의 철수 및 러시아의 진입이 뚜렷하다. 이스라엘로선 러시아란 새로운 ‘보험’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푸틴 대통령은 14일 사우디아라비아, 16일 아랍에미리트(UAE)도 찾았다. 두 나라 모두 잘 알려진 미국의 맹방이다.

2000년부터 19년째 집권 중인 그는 올해 내내 자국에서는 골머리를 앓았다. 장기집권 피로감, 경제난, 연금개혁 반발 등으로 주요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패했다. 7월 내내 모스크바를 포함한 주요 도시에서는 공정선거와 반(反)푸틴을 외치는 시위가 벌어졌다. 한때 90%에 달했던 지지율은 30∼40%대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을 시리아 사태로 한 방에 만회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안보 숙원 해결한 에르도안

‘현대판 술탄’ 에르도안 대통령은 실속을 가장 많이 챙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리아 북부 국경의 길이 444km, 폭 30km 지역을 ‘안전지대(완충지대)’로 만들겠다는 명목하에 사실상의 영토 확장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곳은 원래 시리아 땅이었다.

지난해부터 터키의 경기침체, 고물가, 고실업이 심해지면서 민심은 급속도로 그에게 등을 돌렸다. 올해 3월 최대 도시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집권 정의개발당 후보는 야당 후보에게 패했다. 에르도안 정권은 선거 부정을 내세우며 6월 재선거를 실시했다가 더 큰 표차로 패했다. 이스탄불시의 한 해 예산만 5조 원이 넘는다. 현지 언론은 2003년 에르도안 집권 후 이 돈의 대부분이 에르도안 정권의 기반을 다지는 데 쓰였다고 지적한다. 행정수도 앙카라, 3대 도시 이즈미르에서도 모두 야당 후보가 당선됐다.

내부 위기가 심각해지자 에르도안 대통령은 ‘외부의 적’ 쿠르드를 집중 공격하며 불만에 찬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 터키 정부는 8200만 인구의 18%에 달하는 자국 내 쿠르드족 1500만 명이 시리아 쿠르드족과 연합해 독립 국가를 추진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터키와 러시아가 공동 관리하는 이번 안전지대 건설로 쿠르드족 독립은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터키군은 이번 사태에서 쿠르드 민간인과 어린이들에게 화학무기 ‘백린탄’까지 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런데도 에르도안의 반대파들조차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있다. 그만큼 ‘쿠르드족 독립 저지’라는 에르도안의 성과가 터키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 못지않게 중동 영향력 확보에 관심이 많다. 2017년 사우디, UAE 등 걸프만 수니파 국가들은 시아파 맹주 이란과 가깝게 지낸다는 이유로 카타르와 단교했다. 그는 카타르의 요청을 받아들여 곧바로 군대를 파병했다. 지난해 10월 이스탄불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피살되자 집요하게 사우디를 압박했다.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에르도안 정권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정의개발당 행사에서 “우리는 왜 핵미사일을 가질 수 없느냐”고도 했다.

이런 터키의 ‘반미·친러’ 행보도 두드러진다. 과거 오스만 튀르크와 제정 러시아는 흑해와 발칸반도 등에서 대립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는 나토 회원국으로서 옛 소련 견제를 담당해왔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거센 반대와 경제 위협에도 터키는 ‘러시아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불리는 지대공 미사일 ‘S-400’을 도입했다. 에르도안은 2016년 7월 군사 쿠데타를 진압한 후 배후로 최대 정적(政敵) 겸 이슬람 지도자 펫훌라흐 귈렌을 지목했다. 귈렌은 1999년부터 20년째 미국에 망명 중이다. 에르도안은 미국이 귈렌의 터키 송환을 거부하자 본격적으로 미국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 반대파 척결한 아사드

아사드 대통령도 이번 사태로 상당한 득을 봤다. 8년간 이어진 내전으로 시리아가 사분오열돼 대통령보다 사실상 지역 영주에 가까운 처지였지만 쿠르드족, IS, 반군이라는 세 부류의 반대파가 모두 이런저런 타격을 입으면서 그가 활동할 여지가 넓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동 전문가들은 그가 이번 사태로 국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의 영향력을 다시 확보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선 그는 터키군에게 대항하기 위해 쿠르드족과는 과거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손을 잡았다. IS는 사실상 궤멸됐고 반군의 영향력도 과거보다 줄었다. 든든한 후원자인 러시아는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줄곧 아사드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해줬다. 푸틴 대통령의 중동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일정 부분 수혜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아사드 대통령은 35세의 젊은 나이로 최고 권좌에 올랐다. 1971년부터 2000년까지 29년간 시리아를 통치한 부친 하페즈는 아랍민족주의와 반미를 기치로 걸고 현대화를 주도해 ‘중동의 비스마르크’로 불렸다. 특히 정적과 반대파를 가혹하게 몰살하는 철권통치로도 악명을 떨쳤다. 영국 유학을 떠나 안과 의사가 됐던 아사드는 원래 후계자였던 형이 교통사고로 숨지자 귀국했고 부친 사망 후 정권을 이어받았다.

아사드 일가는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파다. 과거 시리아를 식민통치했던 프랑스는 1850만 인구의 70%가 넘는 수니파 대신 소수파인 알라위파에 힘을 실어주며 이이제이 전략을 펴왔다. 태생부터 소수파의 한계를 지녔던 아사드 정권은 ‘아랍의 봄’으로 중동 전체에 민주화 열기가 높아지자 위기를 맞았다. 2013년 3월 전국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자 그는 유혈 진압에 나섰고 반대파들은 더 거세게 반발했다. 이는 길고 긴 내전으로 이어졌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아사드 대통령은 부친의 유훈이기도 한 반미 노선을 포기할 수 없는 상태다. 미국은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 등을 인권 범죄로 보고 그를 강력히 비판해왔다. 달리 말해 그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이 러시아란 뜻이다. 시리아 출신의 한 중동 전문가는 기자에게 “인권과 민주주의 개념이 약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면에서 아사드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코드가 잘 맞는 사이”라고 말했다.

아사드 정권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활용해 국경 지대에서의 터키의 활동을 견제할 가능성이 높다. 터키도 시리아에서 보폭을 더 넓히려면 러시아와의 협의가 필요한 처지다. 러시아 역시 명실상부한 중동의 패권국이 되려면 터키와 시리아의 협조가 필요하다. 푸틴, 에르도안, 아사드 등 세 스트롱맨의 합종연횡 행보는 앞으로도 무게 추를 달리하며 상당 기간 중동 정세를 좌지우지할 것으로 보인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기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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