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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기획]“힐러리도 젭도… 골드만삭스 경선이 백악관行 1차 관문”

하정민 기자

입력 2015-04-11 03:00:00 수정 2015-04-1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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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 ‘골드만 커넥션’



“골드만삭스가 미국 정치의 중심으로 복귀했다.”(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

2016년 미국 대선이 다가오면서 주요국 언론들이 수익과 영향력 면에서 세계 최고 투자은행으로 꼽히는 골드만삭스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 회사의 위력은 일반인의 예상보다 크지만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대선 주자들은 이 회사의 영향력을 알고 있다. 공화당 주요 대선 주자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지난달 초 뉴욕에서 지지를 호소할 때 골드만 자선재단을 정치행사 주관 단체로 택했다. 그의 대항마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민주) 등을 견제하려는 포석이라는 말이 나왔다. 클린턴 전 장관은 골드만삭스 출신의 사위를 두고 있다. 다른 대권 경쟁자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아내가,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형이 이 회사 출신이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힐러리 전 장관과 부시 전 주지사가 대선 후보로 뽑히려면 당내 경선이 아닌 골드만삭스 경선부터 통과해야 한다”고 짚기도 했다. 골드만삭스가 어떤 후보를 지원할지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라는 것이다.

이 회사의 전현직 고위 임원들은 ‘거번먼트 삭스(government sachs·골드만삭스 정부)’란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미 정재계 요직을 차지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일개 민간 금융사에 왜 ‘정부’란 별칭이 붙었는지 논란이 일 법도 하지만 이 회사를 거친 인물 면면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회사는 헨리 폴슨, 로버트 루빈, 헨리 파울러 등 미 재무장관만 3명을 배출했다. 현 유럽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마크 카니 영국중앙은행 총재도 이 회사 출신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골드만삭스 인맥이 존재한다’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의 평가가 과장이 아니다.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 씨티그룹 등 세계 금융위기 당시 직격탄을 맞은 다른 금융사들이 사라지거나 쇠퇴했지만 골드만삭스는 오히려 매년 사상 최고 순익을 경신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2014년 순이익은 84억8000만 달러(약 9조3280억 원). 골드만보다 자산 규모가 2배 이상 많은 미 2위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같은 기간 절반 수준인 48억3000만 달러의 이익을 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다.

골드만삭스의 전설 존 화이트헤드

창업자 마커스 골드만은 독일계 유대인이다. 1848년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1869년 뉴욕 맨해튼에 ‘마커스 골드만’이란 작은 간판을 걸고 유대인을 상대로 어음 장사를 했다. 사업이 제법 번창하자 사위 새뮤얼 삭스까지 불러 동업을 했다.

당시 골드만삭스의 모습에서 오늘날 금융제국(帝國)을 떠올리긴 힘들다. JP모건, 뱅크오브 뉴욕멜런 등 앵글로색슨 백인 신교도(WASP)계 대형 금융사가 넘쳐나는 월가에서 영어도 서툴고 꾀죄죄한 행색의 골드만 사람들은 주목받지 못했다. 골드만삭스는 설립 70여 년이 지난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도 전 직원이 300명 미만의 소형 회사였고 수익 모델도 주식과 채권 거래 등이 고작이었다.

이런 골드만삭스의 변신을 주도한 사람이 존 화이트헤드 전 회장(1922∼2015)이었다. 골드만삭스는 그가 입사한 1947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회사로 탈바꿈했다는 평을 얻는다. 그는 1984년 퇴직할 때까지 37년간 근무하며 기업 인수합병(M&A) 중개 및 기업공개(IPO) 주관이라는 지금의 골드만삭스 수익 모델을 만들어 냈다. 2014년 말 기준 직원 3만3000여 명, 자산 1조270억 달러(약 1129조7000억 원)의 금융 공룡으로 부상할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화이트헤드의 퇴직 후 모습도 모범적이었다. 1985∼1989년 로널드 레이건 정권에서 국무차관을 지낸 그는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 등 동유럽 지도자와 자주 만나며 물밑에서 동유럽의 개혁 개방을 도왔다. 2001년 9·11테러 직후에는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지역에 프리덤타워 등을 짓는 일을 주도한 로어맨해튼개발공사(LMDC) 회장을 지냈다. 당시 이미 80대인 그가 200회가 넘는 복구 계획 수립을 위한 청문회를 진행하고, 유가족 관료 지역주민 기부자 등과 수시로 만나 복구 작업을 지휘하자 미국 곳곳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올해 2월 그가 타계하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등 미국 지도층이 “국가를 위한 그의 업적과 헌신에 깊은 공경을 표한다”며 애도했다.

골드만 인맥의 대부 로버트 루빈

골드만삭스 임원이 퇴직 후 행정부 고위인사로 변신하는 것을 ‘골드만-워싱턴 셔틀(The Goldman to Washington Shuttle)’이라 부른다. 이 변신의 성공 방식을 굳힌 인물은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77)이다. 골드만삭스 회장 출신인 그는 1995∼1999년 미 경제 사령탑으로 활동하며 빌 클린턴 정권 8년간의 유례없는 경제 호황을 주도해 ‘역대 최고의 재상(宰相)’이란 찬사를 들었다.

그가 주도한 강한 달러와 재정적자 축소 정책은 골디락스(goldilocks·높은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 경제로 이어졌다. 당시만 해도 성장률과 물가는 비례한다는 것이 정설이었기에 ‘고성장-저물가’의 조합에 세계적 경제학자들도 크게 놀랐다. 당시 미 정부의 경제정책을 대통령이 아닌 그의 이름을 딴 ‘루비노믹스(Rubinomics)’로 부르는 것만 봐도 루빈의 위상과 입지를 알 수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을 포함한 미 최고 권력자들에게 ‘골드만 출신들은 똑똑하고 일도 끝내주게 잘하니 반드시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인상을 남긴 것은 누가 뭐래도 루빈의 공이 크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클린턴 정권의 게리 젠슬러 재무차관 등 똑똑한 골드만 후배들을 직접 워싱턴으로 데려와 골드만 커넥션의 기틀을 완성했다.

버락 오바마 정권의 초대 재무장관 티머시 가이트너는 골드만삭스 근무 경험이 없는데도 골드만 인맥으로 분류된다. 이 역시 루빈과 깊은 관련이 있다. 루빈은 1995년 재무장관이 되자마자 34세의 초짜 관료 가이트너를 재무차관보로 전격 발탁했다. 하버드대 출신인 가이트너의 후원자를 자처한 래리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의 천거가 있었지만 인재를 알아보고 과감히 기용하는 루빈의 안목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깜짝 인사였다.

루빈 밑에서 차근차근 실무를 익힌 가이트너는 이후 승승장구하며 재무장관에 올랐다. 이로 인해 오바마 정권의 경제정책 또한 루비노믹스를 충실히 계승했다는 평을 듣는다.

골드만삭스를 향한 백악관의 구애는 공화당 정권에서도 뜨거웠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 조슈아 볼턴 백악관 비서실장, 로버트 졸릭 국무차관 겸 세계은행 총재, 스티븐 프리드먼 국가경제위원회(NEC) 의장, 존 코자인 뉴저지 주지사, 루번 제프리 국무차관, 로버트 스틸 재무차관보 등 조지 W 부시 정권의 핵심 관료가 모두 골드만 출신이다.

팀워크·인맥·부(富)가 성공 비결


골드만삭스 출신이 각계각층의 요직을 휩쓰는 요인으로는 월가의 극심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우수한 능력과 폭넓은 국제금융 지식, 끈끈한 인맥과 팀워크를 중시하는 조직문화, 최고 수준의 연봉이 꼽힌다.

골드만삭스는 설립 후 130년이 지난 1999년에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다.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소수의 파트너(지분을 보유한 고위 임원)들이 집단 지도체제 형식으로 회사를 이끌어왔다. 이런 과정에서 팀워크와 합의를 중시하고 유명세를 좇지 않으며 혼자 튀는 스타플레이어를 배격하는 기업문화가 깊이 뿌리내렸다.

이런 풍토는 골드만 출신들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의견 조율 및 타협이 필수인 관료로 쉽게 변신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코자인 전 뉴저지 주지사는 “골드만삭스는 일반 기업보다 훨씬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설득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평했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분위기도 강하다. 프리드먼 전 NEC 의장을 백악관에 불러들인 인물은 볼턴 전 비서실장이며 루빈 전 장관을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소개한 인물은 케네스 브로디 전 수출입은행장이다.

골드만삭스 웹사이트에는 일반 대학과 마찬가지로 동문(Alumni) 코너가 있다. 이 코너를 통해 전현직 골드만 멤버들은 서로를 소개받고 자신의 현 직책과 사업을 홍보하며 ‘한 번 골드만 맨은 영원한 골드만 맨’임을 느낀다. 회사를 떠난 뒤에도 끈끈한 인맥이 이어지도록 한 것이다.

여생을 아무런 걱정 없이 보낼 정도의 부를 일찌감치 쌓는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골드만삭스 직원의 평균 연봉은 37만3265달러(약 4억1059만 원)로 미 최대은행 JP모건체이스의 12만4959달러보다 3배 많다. 로이드 블랭크파인 최고경영자(CEO)의 연봉도 2400만 달러(약 264억 원)로 월가 금융사 CEO 중 최다였다. 부와 자신감을 겸비한 엘리트들이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골드만이라는 둥지를 벗어나도 다른 곳에서 능력을 펼칠 바탕이 마련된 셈. ‘골드만삭스에서 퇴직한 뒤 할 일은 정치와 골프뿐’이란 말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골드만삭스가 대선 후보를 지원하면 당선은 떼놓은 당상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2008년 대선에서 골드만은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를 지원해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2012년 대선에서는 밋 롬니 공화당 후보를 지원했다가 롬니가 고배를 마시는 것도 목격했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는 골드만이 과연 누구를 밀어줄까. 월가 역사학의 권위자인 찰스 가이스트 맨해튼칼리지 교수는 “골드만이 2016년 11월 대선 직전까지 민주와 공화 양쪽을 모두 지원하는 척하다가 막판에 가서 유력한 지지 후보를 결정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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