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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기획]소똥, 말똥, 햇빛… 脫원전 선언 독일이 믿는 구석

이종석기자

입력 2015-03-07 03:00:00 수정 2015-03-08 00: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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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재생에너지 현장을 가다

인구 20만 명의 소도시 프라이부르크. 독일 내에서 일조량이 많은 편에 속하는 이곳에는 공동주택, 호텔, 축구장, 주차장, 상점 등 2000여 동의 건물에 태양광판이 설치돼 있다. 그린시티 클러스터 제공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나자 가장 빠르게 반응한 나라는 독일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독일에서 가동 중이던 원전은 모두 17기. 이 중 오래돼 낡은 8기를 독일은 그해 6월 폐쇄해 버렸다. 당장은 안전성에 별문제가 없는 나머지 9곳도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두 문을 닫는다. ‘탈(脫)원전’을 선언한 것.

독일의 이런 대처는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우리나라는 설계 수명 30년을 넘긴 월성 원전 1호기(1983년 가동 시작) 사용 연장 문제 하나를 놓고도 2년 넘게 시간을 끌었다. 안전성이 의심되므로 사용 연장은 안 된다는 쪽(환경단체)과 안전성에 문제가 없고 경제성까지 갖췄으니 계속 돌려도 괜찮다는 의견(정부)이 있었다. 양측이 맞서 결론을 내지 못하다 결국 지난달 27일 2022년까지 가동을 연장하기로 했다.

독일은 어떻게 원전 탈출을 선언할 수 있었을까? 우리보다 원전 안전성이 많이 떨어져서? 독일은 한때 원전을 37기까지 보유한 원전 대국이었다. 독일의 원전 운영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독일이 미련 없이 원전 포기를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 독일은 원자력이나 온실가스를 내뿜는 화석 연료가 아닌,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량을 차근차근 늘려 왔다. 독일이 믿었던 건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에네르기벤데(energiewende·에너지 전환)’.

마우엔하임의 바이오에너지 관련 시설. 여기서 쇠똥이나 옥수수 등을 원료로 바이오가스를 만들고, 이 가스를 이용해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마우엔하임=이종석 기자
바이오에너지 마을

‘Herzlich willkommen im Bioenergiedorf Mauenheim.’

독일 남서부의 한 마을 어귀에 이렇게 적힌 안내 표지판이 서 있다. ‘바이오에너지 마을 마우엔하임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내용이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있는 마우엔하임은 400명 남짓 사는 작은 농촌 마을이다. 소 키우면서 옥수수 농사를 주로 짓는 이 마을에 어쩌다 ‘바이오에너지 마을’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전체 100여 가구가 되는 이 마을은 전기와 온수를 자체 생산한다. 마을을 가로질러 끝자락에 이르면 쇠똥, 말똥, 옥수수 같은 바이오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시설이 있다. 그래서 이 마을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마우엔하임은 니더작센 주의 윈데에 이어 독일에서 두 번째로 바이오에너지 이름표를 단 마을이다.

쇠똥으로 전기를 만든다고?

이 마을에서는 1500m³ 공간의 대형 저장시설 2곳에 쇠똥, 말똥, 옥수수 등을 집어넣고 이를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나오는 바이오가스로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든다. 발전기를 돌리기에 앞서 바이오가스 열량을 높이기 위해 이산화탄소 등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메탄의 순도를 높이는 정제 과정을 한 번 거친다.

이런 방법으로 이 마을은 연간 7500t의 가축 분뇨와 6500t의 옥수수를 원료로 사용해 400만 kWh의 전기를 생산한다. 마을 전체가 1년 동안 쓰는 전력량의 약 9배다. 바이오가스로 발전기를 돌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은 생활용수를 데우는 데 쓴다. 이렇게 해서 연간 35만 L의 온수를 생산한다. 마을 주민들이 6개월 동안 쓸 수 있는 양이다. 친환경 에너지를 이용한 전기 생산으로 석탄, 석유 같은 화석 연료를 쓸 때보다 연간 2600t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독일에는 마우엔하임 같은 바이오에너지 마을이 150곳 가까이 된다. 바이오에너지 마을 주민들은 협동조합 등의 형태로 전기를 생산해 자체 소비하고, 남는 전기는 전력회사에 판다. 이런 마을이 많이 생긴 건 독일 정부가 에네르기벤데 정책을 추진하면서 만든 재생에너지법의 영향이 크다.

2000년 제정된 이 법에 근거해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고 지구온난화에도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는 풍력이나 태양광, 바이오가스 등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전기 생산자는 보조금(2014년 기준 kWh당 평균 0.17유로·약 214원)을 받는다. 또 전력회사들은 이들이 생산한 전기를 일정 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사줘야 한다.

이 법이 효과를 발휘해 독일은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전력 생산 비율이 법 제정 이듬해인 2001년 7%에서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에는 28%까지 늘었다. 원자력발전 비율 15%의 두 배에 가깝다. 독일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한 발전 비율을 2030년 50%, 2050년에는 8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보봉 마을에 있는 주택 ‘헬리오트로프’. 태양 궤도를 따라 회전할 수 있게 설계된 이 집은 이 지역 관광코스 중 하나다. 프라이부르크=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태양의 도시

독일은 태양광발전으로 연간 31GWh(2014년 기준)의 전기를 생산하는 나라다. 1GWh는 약 33만 가구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양. 태양광발전만으로도 1000만이 넘는 가구가 1년 내내 쓰는 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햇빛이 강한 여름 화창한 날에는 나라 전체 하루 전기 수요의 절반에 가까운 양을 태양빛에서 뽑아내기도 한다. 독일에는 태양광발전 시설이 150만 곳에 이른다.

‘태양의 도시’라 불리는 프라이부르크는 독일 태양광발전의 상징과도 같은 지역이다. 인구 20만 명의 프라이부르크 시내에서는 일반 공동주택뿐 아니라 주차장 위, 호텔과 축구장 지붕, 상가 건물 벽 등 곳곳에 태양광판이 설치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태양의 도시답게 1300명의 연구원을 둔 유럽 최대 태양에너지 연구기관 프라운호퍼 연구소가 이곳에 있다.

프라이부르크 보봉 마을에 있는 3층짜리 원통형 주택 헬리오트로프는 관광지가 됐을 정도. 옥상에 태양광판이 설치돼 있는 이 집은 겨울에는 햇빛이 잘 드는 쪽을 향해, 한여름 낮에는 덜 드는 쪽으로 회전할 수 있게 설계됐다.

프라이부르크에서 많은 태양광판을 볼 수 있는 건 1980년대부터 ‘그린시티’를 표방한 시의 노력 덕분이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프라이부르크가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에 속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특히 프라이부르크가 태양광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지형 때문이다. 넓게 퍼진 평지 형태인 프라이부르크는 연간 1800시간의 일조시간과 m²당 1.12kWh의 일조량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일조량이 많지 않은 독일 내에서는 햇빛이 아주 좋은 편에 드는 도시다.

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시 소유 땅에 짓는 모든 건물에는 태양광판을 설치하도록 했다. 시 소유 땅이 아니더라도 새로 짓는 공공건물은 반드시 태양광판을 두어야 한다. 또 건축물 전수조사를 통해 △태양광판이 설치된 건물 △당장 설치할 수 있는 건물 △약간의 구조변경을 하면 설치할 수 있는 건물 △당장 설치하기 힘든 건물 등으로 분류한 지도를 만들어 놓고 건물주들을 찾아다니면서 태양광판 설치를 장려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에는 태양광판이 설치된 건물이 2000동가량 있다. 태양광판 설치가 가능한 건물의 25% 정도다.

시의 의뢰를 받아 건축물 전수조사 작업을 진행한 ‘그린시티 클러스터’의 코리나 크레브스 연구원은 “태양광발전은 초기에 시설 비용이 들어가지만 전기요금을 아낄 수 있는 데다 생산한 전기를 판매할 수도 있어 장기적으로는 결국 이익이 되는 친환경 에너지원”이라고 했다.

프라이부르크는 2050년까지 전력 소비량 100%를 태양광과 풍력, 수력, 바이오에너지 등의 재생에너지만으로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내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정부 발표 기준으로 4% 정도. 하지만 국제 기준을 적용하면 1%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산업폐기물까지 재생에너지 범위에 넣고 있다. 이런 나라는 드물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으로 원자력(30%)과 유연탄(38%) 발전 비율이 전체의 70% 가까이 차지한다.

마우엔하임 같은 에너지 자립 마을은 우리나라에 아직 없다. 바이오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시설은 전국에 27곳이 있지만 이 중 20곳은 음식물 쓰레기 등을 처리하는 공공시설이고, 민간 자본이 운영하는 시설은 7곳뿐이다.

그나마 박근혜 정부가 친환경 에너지타운 건설을 국정과제로 삼아 지난해 10월 강원 홍천에서 첫 삽을 떴다. 이르면 내년 9월쯤 우리나라에도 재생에너지로 난방용 가스와 전기 등을 생산하는 마을이 생긴다. 홍천 소매곡리 마을은 가축 분뇨와 음식물 쓰레기로 바이오가스를 생산하게 된다. 이를 강원도시가스가 난방 취사 등의 생활용 도시가스로 쓰기에 적합한 수준까지 열량을 높여 이 마을에 다시 공급해 주고, 남는 건 다른 곳에 판매한다. 강원도시가스를 자회사로 둔 SKE&S가 이 마을의 바이오에너지 자원화 시설에 투자했다. 마을이 태양광과 수력으로 생산한 전기 중 남는 것은 한전에 팔게 된다. 정부는 이런 친환경 에너지타운을 2017년까지 15∼2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마우엔하임·프라이부르크=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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